몇 달 전, 아주 가끔 하는 조찬모임이 있었다. 정년퇴직을 한 나와 퇴직 후 일을 새롭게 시작한 친구와 퇴직을 앞둔 또래가 만났다. 아침 7시 한강이 내다보이는 커피집 문을 열기를 기다렸다가 따스한 커피 한잔으로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퇴직한 지인이 죽는다고 난리 치며 상태가 심각하단다. 정년퇴직하고 퇴직금 1억 원을 어디에 투자했더니 처음에는 꼬박꼬박 이자도 잘 나와 신뢰감이 쌓였단다. 욕심이 생겨 5억을 더 넣었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자도 안 오고, 연락도 안 되니 불안해서 잠도 안 오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지인을 찾아가 생존확인(?)을 하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에 자기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 친구 지인의 안부를 물어보니 결국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목숨값이 5억밖에 안되냐며 다독여줘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책이 여전해 당분간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거 같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정년퇴직하니 인생 선배들 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사기성 짙은 사건에 눈도 귀도 어두워지고 마음만 앞서 가게 되는 시간이 꼭 온다더니 딱 그 말이 맞는구나 싶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고, 공짜가 없다. 돈이 쉽게 생기는 일은 세상에 없다.
오래전 한 친구가 그저 지키기만 하는 일일 아르바이트로 신나 했다. 한데, 그저 지키기만 했을 뿐인데 몸살이 나서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고생했구나, 위로하고 나중에야 놀림 삼아 얘기했다. 인생이 ‘고생고생해 돈 벌어 갈 때는 병원비로 다 내고 간다더라’라는 얘기를 나누며,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일을 무리하게 하지 말고 건강을 먼저 생각하자. 나이 생각 안 하고 몸 생각 안 하고 지나친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물론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혹시 여러분은 ‘황혼의 욜로라이프 쓰죽회’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줄임말을 풀어보면 ‘다 쓰고 죽는 모임’이다. 이는 자녀에게 유산상속을 고려하지 않고 벌어둔 돈으로 노후생활을 즐기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장년기의 많은 예비 은퇴자가 ‘쓰죽회’에 공감하고 있다. 부자가 아니어도 ‘다 쓰고 가리라’하며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후를 즐기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처럼 ‘쓰죽회’가 만들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면 노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엿보인다.
경북 어느 지역 쓰죽회 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의 말이다. ‘다 쓰고 죽겠다’의 목적어가 항상 돈인 것은 아니다. 재능을 기부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도 다 쓰고 가야 할 자산이다. “가진 돈이 많아 다 쓰고 죽자는 게 아니니까요. 물질적으로만 다 쓰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진 것을 작은 부분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 남에게 베풀자는 의미라고 쓰죽회를 정의합니다. 기회 될 때마다 불우 이웃 시설을 방문해 조금씩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죠.”
이렇게 신선하고 바람직한 사고의 변화가 이제는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본보기를 찾아 공부하고 실행하는 삶이 필요하다.